[역경의 열매] 김덕호 (11) 장학금 절박한 상황에 잇따른 행운
- 작성일2009/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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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고민했다. 고향의 교회 건축을 위해서라도 나는 장학금을 꼭 받아야 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민병일 선배에게도 나름대로 절박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튿날 민병일 선배와 내가 나란히 강 교수님 앞으로 불려갔다.
“누가 5·16 장학금을 받겠는가. 우리 학과로서도 좋은 기회이니 오늘 이 자리에서 둘 중 1명으로 결정하는 것이 좋겠네.”
내가 먼저 말을 하는 것이 민 선배에게 부담이 적을 것 같았다. 새벽기도 시간에 결심한 대로 말했다.
“민병일 선배님을 5·16 장학생으로 추천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에게는 앞으로 또 기회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민 선배가 서둘러 내 말을 끊었다.
“아닙니다. 후배인 김덕호 군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5·16 장학금이면 졸업할 때까지 받을 수 있는데, 덕호가 받으면 장학금 수혜 기간도 더 길어지니 학교로서도 더 이익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덕호에게 양보하는 것이 여러 모로 좋겠습니다.”
우리는 한동안 서로 양보를 반복했다. 강 교수님은 지긋이 웃으시며 민 선배의 말대로 후배인 나를 추천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일을 계기로 민 선배와는 두터운 정을 갖게 됐다. 서로 개업할 때나 학위를 받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찾는 선후배 사이가 됐다. 민 선배는 지금 경희대 의대 생리학과 교수로 계시며 세계적인 인명사전 ‘마르퀴스 후즈후(Marquis Who's Who)’에 등재되기도 했다.
하나님의 축복이 이어졌다. 경주 김씨 종친회에 신청한 장학금도 받게 됐다. 종친 장학금은 대학원 석사 과정까지 수혜를 받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한의대에는 나이가 많은 신입생들이 꽤 있었는데, 그런 후배 중 몇 사람이 내게 학과 과외를 요청했다. 배운 것 중에서 중요한 요점만 정리해 달라는 것이다. 학과 공부도 되고 생활비도 벌 수 있는 길이었다. 이렇게 되니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도, 생활비도 다 해결이 됐고 오히려 모교회에 필요한 피아노나 OHP 같은 물품까지 바칠 수 있게 됐다.
이 모든 일이 내게는 기적과도 같았다.
시간의 여유를 얻은 나는 틈나는 대로 의료 봉사 활동도 하고, 또 당시 전철 휘경역 옆에 있었던 성문교회에서 교회학교 교사로도 봉사했다. 교회학교는 중학생 때부터 보조교사로 활동해 왔기에 빠질 수 없었다.
어느 주일이었다. 한 아이가 감기가 걸린 채로 교회에 왔다. 기침도 하고 열도 있었다. 위생병원 부근에서 20분이나 되는 길을 늘 걸어오는 아이였다. 예배 중에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리=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