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곳 '통역' 해주는 다문화병원 (매일경제 mk뉴스)
- 작성일2010/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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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와 결혼해 살고 있는 러시아인 N씨(28)는 얼마 전 넘어지면서 왼쪽 손목과 머리 뒷부분을 다쳤다. 혹시나 뼈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지만 우리말이 서툰 탓에 병원을 갈 수도 없었다. 남편도 출장 중이라 혼자 끙끙 앓기만 하던 그는 최근 지인의 소개로 국립중앙의료원 다문화가정 진료센터를 찾았다. 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러시아 유학생 도움을 받아 X선 등도 촬영하고 진료도 꼼꼼하게 받을 수 있었다.
우리말이 아직 서툰 다문화가정 환자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병원에서의 의사소통이다. 몸이 아파도 어떻게 증세를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고 의사 설명도 알아듣기 힘들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최근 한국다문화연대, 지역사회 대학과 협약을 맺고 다문화가정 진료센터를 열었다. 진정한 다문화 사회로 가기 위해 작지만 의미 있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개소 한 달 보름을 막 넘긴 다문화가정 진료센터를 찾은 지난 10일, 분주하게 자료를 넘겨보는 간호사, 환자 데이터를 검색하고 있는 행정직원 뒤로 유창한 한국어와 모국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베트남 출신 유학생과 중국 출신 유학생이 환자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후 2시 30분이 조금 지났을까. 센터에 갑자기 사람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바이러스성 감염질환을 앓고 있는 베트남 출신 T씨(25)에 대한 통역 지원이 필요해진 것.
T씨는 다문화가정 진료센터가 아닌 일반 외래환자로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내과를 찾았는데 상태가 심각한 T씨를 본 의사가 다문화가정 진료센터에 진료를 의뢰했다. 자세한 증상 설명을 듣고 내시경검사 등 각종 정밀검사 안내도 해야 했지만 T씨의 한국어가 워낙 서툰 탓이었다.
다문화가정 진료센터 도움으로 문제는 쉽게 해결됐다. 경희대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는 베트남 출신 레프엉하 씨(23) 통역으로 T씨는 자신의 몸상태에 대해 의사에게 세세히 설명하고, 의사에게서 내시경검사 진행 과정에 대한 안내도 받을 수 있었다.
다문화가정 진료센터는 현재 성형외과 전문의 홍인표 센터장을 필두로 산부인과, 정형외과, 소아청소년과, 정신과에 이르기까지 10개과의 전문의가 오전ㆍ오후 당직체제로 기본진료를 맡고 있다. 센터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14개국 출신 41명에 달하는 풍부한 통역 자원봉사자 풀(pool)이다.
고려대 경희대 한국외국어대 연세대 중앙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에 재학 중인 외국인 유학생으로 구성된 이들 자원봉사자 덕분에 중국어와 베트남어, 러시아어는 물론 인도네시아어, 몽골어까지도 지원받을 수 있다.
센터에 통역 자원봉사자가 없더라도 언제든 전화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레프엉하 씨는 "동포를 도우면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센터장인 홍인표 성형외과 과장은 "한국다문화연대에서 마련한 1800만원의 기금과 국립중앙의료원이 가진 공공의료기금 3300만원 등으로 저소득층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선천성 질환에 대한 무료 진료까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다문화가정 진료센터는 전국으로 확산될 분위기다. 이날 벤치마킹을 위해 국립중앙의료원을 찾아온 경북 영주시립병원 하만욱 행정부원장은 "영주에만 250여 다문화가정이 있다"며 "최대한 많이 배워가 다문화가정 의료서비스 지원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고승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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