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덕호 (19) 첫 영문 한의학교과서 국내외 큰 반향
- 작성일2009/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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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아득했다. 손가락으로 옆머리의 태양혈과 목덜미 풍지혈을 급히 눌렀다. 겨우 시야가 트였다. 조심스럽게 차를 몰아 겨우 터널을 빠져나왔다. 터널 밖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는 후면 거울에 내 얼굴을 비춰보았다. 백지장처럼 하얀색이었다.
600여쪽 영문 한의학 교과서의 깨알 같은 글씨를 여러 번 교정하면서 가끔 머리가 핑 돌고 힘이 빠지기도 했다. 그 때문에 몸이 상한 것이다.
터널을 빠져나와 생각하니 자칫하면 큰일이 날 뻔했다. 터널에서 앞뒤로 오가는 차들이 나를 제때 보지 못했다면 어쩔 뻔했는가. 마치 사선에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그때부터 터널에만 들어가면 착시가 생기고 어지럽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나중에는 터널 근처만 가도 벌써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해졌다. 터널증후군이었다. 나는 매주 서울에서 영주까지 오가야 하는데, 그 길에는 터널이 15개가 있다. 한밤 중에 응급 상황이라도 발생하면 직접 운전해야 하니 문제가 더 컸다.
주님께 매달렸다. 교과서를 88올림픽에 활용하려면 몸이 지쳐도 쉴 수가 없었다. 건강을 지켜 달라고 기도하며 마지막 원고를 정리했다. 그림까지 모두 새로 그렸고, 영문에 없는 용어는 새로 만들어가며 썼다. 마침내 탈고한 날, 나는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이틀을 누워 있어야 했다. 받아든 책의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Acupuncture and Moxibustion’.
‘침구학과 뜸 요법’이라는 뜻이다. 이 책에는 한국 특유의 사암침법과 사상침법 등 전통 침구술을 수록하고 임상 경험과 실험 데이터를 포함시켰다. 영자 신문과 일간지, 전문지들이 일제히 보도했고 문화방송 등 공중파 방송의 뉴스에도 소개됐다. 세계 각국에서 전화가 왔다. 대사관과 도서관에서 책을 보내 달라고 요청이 쏟아졌다. 내게 자기 나라로 와서 강의를 해달라는 곳도 줄을 이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책을 통해 한국 한의학이 알려지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소서.”
교수 시절에 여러 편의 논문을 냈지만 또 한 권 더 소개하고 싶은 책은 1989년에 펴낸 ‘동의 간계내과학’이라는 교과서다. 내가 속해 있는 과에서 김정제 학장님과 김병운 우홍정 교수님, 그리고 내가 참여해 저술했다. 영문 교과서 집필과 겹쳐서 힘이 들었지만,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전국의 간계 한의학 교수들을 대신해 책을 펴내는 일이니 소홀할 수 없었다.
그 무렵이었다. 영주에 계신 아버지가 전화를 했다. 심각한 목소리였다.
“영호 부부가 심각한 상황에 있다. 네가 내 대신 잘 처리해 다오.”
영호는 영주 어머니의 큰아들로 내게는 동생뻘이었다. 영주 어머니 쪽의 일로 아버지가 직접 전화를 하신 것은 처음이었다. 나를 집안의 어른으로 인정하고, 영주 어머니와 한 가족으로 지내라는 뜻이었다. 당시 영호는 연세대 상대를 나와 회사 생활을 하다 장신대로 진학해 목사 안수를 앞두고 있었다. 장안동 영호네 집으로 달려갔다.
정리=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