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덕호 (6) 은혜 받으니 회개하고 용서하게돼
- 작성일2009/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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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내 인생이 바뀌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와 기쁨, 소망이 솟아올랐다. 땅만 쳐다보던 내 영혼이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노래하고 있었다. 찬송을 부를 때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세상에 대한 원망과 어른들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있던 소년 김덕호는 없었다.
내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는 십자가의 은혜. 그 은혜가 내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그 용기를 가지고 이제는 내 주변의 사람들과 관계를 풀어야 했다.
학교 앞에서 문방구점를 하시는 숙부를 찾아갔다. 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아재, 용서해주이소.”
“야가 와 이라노. 퍼뜩 일나라.”
“아입니더. 들어보이소. 지가 국민학교 6학년 때 아재 대신 가게 본다고 만날 들락날락 했다 아입니꺼. … 그때 10환씩 20환씩 제 호주머니에 챙긴 적이 많았심더. 그때는 용돈도 궁하고 해서 그랬는데 철없는 짓을 했십니더. 용서해주이소. 지금은 갚을 길이 없지마는, 내가 크면 꼭 갚겠심더.”
이마에서 진땀이 흘렀다. 숙부는 쉽게 용서해 주셨다.
“아이고, 덕호야. 기특하기도 하재. 마, 됐다. 니 용돈 준 거로 생각해라. 어여 일나라.”
숙부를 뵐 때마다 늘 죄송하고 혹시 알아채지 않았을까 두려웠던 것이 한순간에 풀려버렸다. 할아버지도 찾아갔다.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할배. 지가 할배한테 등록금 달라케놓고 몇번 받아서 써삤심더. 용서해주이소. 앞으로는 안 그라겠심더.”
할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었다. 가만히 고개를 들어보니 할아버지의 눈이 붉게 충혈돼 있었다. 이내 한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할아버지가 우시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나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내 어깨가 나도 모르게 들썩거렸다.
나도 용서해야 할 사람이 있었다. 고등학교에 막 올라왔을 무렵, 몇 녀석이 나를 집단으로 때린 적이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당했다. 평소 그 녀석들을 만나면 복수를 하겠다고 마음속에 칼을 갈곤 했다. 그 녀석들을 찾아갔다.
“느그들, 지난 봄에 내를 모다구리(집단폭행)했재. 머때매 그랬는가는 모르겠는데, 내는 억수로 억울했다. 느그들 한번 걸리면 반쯤 죽이삐야지캤다. 근데 마 이제 다 잊어삘란다. 느그도 잊어삐라. 대신에, 느그들 내하고 같이 교회 가자.”
그 친구들은 지금도 영주에 살고 있다. 가끔 고향에서 만날 때면 이런 옛날이야기를 하며 웃곤 한다. 나중에 그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니, 내가 자기들을 보고도 아는 체하지 않고 지나가는 게 미웠다고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어두운 호롱불이나 촛불 아래서 책을 읽거나 달빛에 글을 비춰보곤 했다. 눈이 나빠져 초등학교 졸업 무렵에는 20m 앞의 사람도 구별하기 어려웠다. 중학생이 된 뒤 은혜 받기 전까지 나는 공부는 좀 한다고 하면서도 나름대로 역 앞에서 담배도 피고 막걸리도 마시고 했다. 그런 놈이 친구들을 모른 체하고 지나가 버렸으니 그 녀석들에겐 눈꼴사납게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찾아가야 할 사람이 있었다. 세상을 같이 살기 싫을 정도로 미워했던 분, 우리 어머니의 마음을 그토록 아프게 했던 분, 바로 영주어머니였다.
정리=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