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덕호 (4) “은사 받겠다” 결의 다지며 부흥회로
- 작성일2009/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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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친김에 말을 더 이어갔다. “까놓고 말해서 우리 집은 부자도 아니데이. 돈도 없다. 부모님도 별로 사이가 안 좋다 아이가. 싸우는 거 말리는 게 일이다. 이런 집안에 태어난 거는 불행한 거다. 하루하루 사는 게 진짜 힘들다. 얼마나 힘들었으모 콱 죽어삘라 그랬겠노. 동생들 아니모 그때 죽었을지도 모른데이. 내사 오늘도 그냥 다 잊어삐고 싶어가 너거들하고 사냥이나 하자 그랬다 아이가. 너거 같으면 우예 했겠노?” 내 말에 친구들이 한마디씩 했다. 성우가 한 말이 기억난다. “덕호야, 내가 보기에는 하나님이 니를 억수로 사랑하고 계시는 거 같다. 니는 이겨낼 수 있을 기다. 딴 생각하지 말고, 이겨가라. 힘내라. 알았재?” 겨울마다 여는 부흥회가 다가왔다. 성우는 나에게 부흥회에 꼭 같이 가자고 말했다. 사실 나는 어른들에게 실망한 뒤부터는 교회도 싫었다. 억지로 예배에 참석해도 설교 시간에는 늘 졸았다. 할아버지 때문에 새벽기도도 갔지만, 마룻바닥에 앉아 졸다가 뒤로 꽈당 넘어진 적도 있었다. 부흥회도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수요일쯤 되니 성우는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했다. 성우 동생은 영어 방언을 받았다고 했다. 기도하는 것을 훔쳐 들으니, 영어도 못하던 아이가 유창하게 영어로 기도를 하는 것 아닌가. 주변을 보니 방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덜덜 떨면서 기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맨송맨송했다. 돌아보니 할아버지나 아버지도 남들처럼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성우가 나를 위해 열심히 기도해 주었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더 답답해졌다. ‘하나님이 없는 것은 아닐까. 있다 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밥도 먹지 않고 매달렸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목요일 저녁이 되자 마치 뭔가에 짓눌리고 갇혀 있는 듯했다. 죽고 싶은 충동이 또 일어났다. 친구들은 다 은혜를 받고 은사까지 받는데 왜 나만 이 모양일까. 성우는 그런 나를 위로해 주었다. 위로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부흥회 마지막 날인 금요일. 어머니가 아침밥을 먹으라고 깨우셨지만 일어나기도 싫었다. 교회 가기도 싫었다. 그냥 집에서 누워 잤다. 성우가 나를 찾으러 왔다. 저녁 6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그는 내게 군고구마를 내밀며 함께 가자고 했다. 성우의 말에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섰다. 교회는 이미 찬송가를 부르는 소리로 가득 했다. 한겨울이었지만 열기가 뜨거웠다. 앉을 자리도 없었다. 맨 앞자리가 황금자리라는 목사님 말씀이 생각났다. 학생이니까 눈치 볼 필요도 없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앞으로 나갔다. 맨 앞자리에 앉은 나는 ‘오늘은 꼭 결판을 내야겠다’고 마음먹고 주먹을 꼭 쥐었다. 그때 부흥회 강사로 오신 목사님이 외치셨다. “내가 은혜 받고 내가 새로워지자.” 그래, 내 문제는 죽든지 살든지 내가 해결해야지. 나는 부흥회의 열기 속으로 조금씩 빨려 들어갔다. 정리=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