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덕호 (3) 은혜 체험한 뒤 용서하는 법 배워
- 작성일2009/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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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줄을 매달았다. 내가 죽으면 모든 문제들이 끝날까.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이 있었다. 동생들의 얼굴이었다. 내가 죽어도 집안 문제는 여전히 7명의 동생들을 괴롭힐 것이다. 죽고 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니 차마 죽을 수 없었다. 매달았던 줄을 풀고 터덜터덜 산을 내려왔다. 또 한번은 마을 저수지로 들어가 죽어려 했던 적도 있었다. 추운 겨울날이었다. 보통 때 같았으면 갈대밭 사이로 조금만 걸어가도 땅이 쑥 꺼지면서 사람을 빨아들이는데, 그때는 늪도 꽁꽁 얼어 있었다. 아무리 걸어도 죽을 수 없었다. 이것도 아닌가 보다 싶어서 다시 걸어 나왔다. 사실 할아버지나 부모님들도 무척 힘이 드셨을 것이다. 실제로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살아계시는 동안 많은 속병을 앓으셨다. 내가 어린 나이였기에 어른들의 그런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다. 나만 고통 받는다고 생각하고 나의 아픔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러고 보면 자식이 부모를 이해하는 것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인생에는 뜻하지 않은 고통이 있을 수 있다. 우리 부모님들처럼 가해자가 없어도 이렇게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이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죽으려고 했지만 죽을 수도 없었다. 가족의 화목을 위해 기도도 했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인생은 고통의 덩어리일 뿐이었다. 어떤 이들은 인간이 실타래처럼 얽힌 고통과 고뇌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훌훌 털어버리고 해탈해야한다고 하다. 기독교에선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용서와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은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이 봐도 분명한 일이지만, 고통에 빠진 인간이 어떻게 남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겠는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신 것이 아닐까. 나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뒤에야 어른들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었다. 마을에는 같은 또래의 여학생이 있었다. 이름은 류성우였다. 성우네와는 할아버지끼리도 친했고, 교회도 어릴 적부터 같이 다녔다. 성우는 나중에 영천으로 이사를 갔지만, 가끔 편지를 주고받곤 했다. 고1 겨울방학 때였다. 교회에 가니 성우가 와 있었다. 그녀는 “방학이 되기만 손꼽아 기다렸다”고 했다. “머때매 그래 기다린노?” “그거야 겨울에는 교회에서 부흥회하니까 빨리 와서 준비도 해야 되겠고, 우리 할배도 아프시니까 걱정도 되고….” 성우는 슬쩍 한마디를 덧붙였다. “또 덕호 니도 보고 싶었다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겨울산을 올라 비둘기와 참새를 잡았다. 내려오는 길에 바위에서 잠시 쉬었다. 산에 오니 얼마 전에 죽으려고 여기를 올라왔던 일이 생각났다. 친구들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았다. “너거들 보기에는 우리 할배가 한의사고 집도 크니까 내가 부럽쟤? 근데 그거 다 빛 좋은 개살구데이. 와 내는 하필이면 이런 집에 태어났는지 진짜 불행하다. 그래서 죽을라캤다.” 내 얘기에 친구들은 놀라는 눈치였다. 성우도 그 자리에 있었다. 정리=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